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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분석/국내 축구 분석

[UEFA 유로] 제로톱의 정점, 유로 2012 결승 전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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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축구 이야기 | 정유석] 스페인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중반까지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티키타카'를 통해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까지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특히 스페인의 티키타카 뿐만 아니라 주목받았던 전술은 바로 '제로톱'이었다. 그들은 유로 2012 대회에서 중앙 미드필더 성향이 강한 파브레가스를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배치시키는 제로톱 전술을 통해 경기를 운영하며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영감을 얻었고, 대한민국 대표팀까지 제로톱을 가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그래서 오늘은 올림피스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제로톱의 정점을 보여주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와의 유로 2012 결승전을 분석해봤다.

출처:UEFA홈페이지/게티이미지

 

- 양 팀 선발 포메이션

스페인의 선발 포메이션은 4-3-3이었는데, 어찌 보면 스트라이커가 존재하지 않는 4-4-2 다이아몬드로도 보인다. 스페인은 보이는 것처럼 미드필더진부터 공격진까지 모두 중앙 지향적인 선수들이 배치됐다. 따라서 중원 싸움에 많은 선수들이 관여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4-1-3-2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중원이 강한 스페인에 중앙 지향적인 포메이션으로 그들을 괴롭히겠다는 것이었다.

 

- 공격적 형태

스페인의 공격 형태는 다음과 같았다. 그러나 중앙 미드필더 세 명과 공격진의 세 명이 워낙 중앙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큰 틀의 형태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빌드업 시엔 센터백들이 넓게 퍼지고, 부스케츠가 그 사이로 들어가며 알론소와 사비가 받아주는 역삼각형 형태의 미드필드 라인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전방 압박의 강도에 따라, 알론소와 부스케츠가 더블 볼란치를 만들어 사비와 함께 정삼각형 형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부스케츠가 하프라인 위로 올라가 빌드업에 참여하기 힘들 땐 사비가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가 빌드업을 돕는 등 미드필더 세 명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패스를 주고받기 좋은 삼각형 형태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공격수로 배치된 이니에스타, 실바, 파브레가스도 자신들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탈리아 포백 근처가 아닌 미드필드 라인까지 내려가 알론소, 사비, 부스케츠와 계속해서 중원 싸움에 함께했다. 과장하면 2-8-0 수준의 형태였다. 스페인 선수들은 포메이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되, 볼을 잡은 동료 주변에서 패스를 주고받기 원활한 곳을 찾아 계속해서 움직였다.

신기했던 점은 패스를 동료에게 준 후 가만히 있지 않고 그 동료와 2 대 1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치고 나가거나 주위를 맴도는 등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 공격 템포

이탈리아의 수비가 밀집한 지역에서 패스의 템포는 매우 빠랐다. 기본적으로 패스를 받기 주고받기 좋은 삼각형태를 계속해서 유지했기 때문에, 짧고 빠른 패스가 오고 갔다. 

패스를 할만한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의 강한 수비를 받는 장면도 있었다. 그땐 공격의 템포가 늦춰지더라도 드리블을 통해 안정적으로 볼을 소유하며 탈압박한 후 패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페인은 빠른 템포의 패스를 선호하지만 완급조절을 통해 더욱 안정적으로 볼을 점유하려 했다.

 

- 주된 공격 루트

스페인의 주된 공격 루트는 좌측면과 중앙이었다.

스페인의 풀백이 공격에서 중요한 역할이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좌측면에서 스페인 선수들이 이탈리아 선수들과 각각 1 대 1로 대치됐을 때, 공격적으로 전진한 풀백 알바가 자유로워진다. 이로써 스페인은 좌측면에서 6 대 5의 수적우위를 점했다.

스페인이 수적 우위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탈리아의 수비 방식 덕분이었다. 이탈리아는 4-4-2 다이아몬드 수비 형태를 만들었다. 그들은 스페인 선수들이 자유롭게 패싱 플레이를 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볼을 잡은 스페인 선수에게 대인방어 형태로 타이트하게 달라붙어 적극적인 수비를 취했다. 이는 개인 돌파와 탈압박이 강한 스페인 선수들에게 잘 통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타이트한 수비를 빠른 템포 혹은 개인 능력으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의 동료에게 패스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 침투

실바와 파브레가스는 사비 혹은 이니에스타가 볼을 잡았을때 이탈리아 수비 뒷공간으로 적극적으로 침투했다.

이탈리아 포백 앞에서 이니에스타 혹은 사비가 볼을 잡기만 해도 이탈리아 포백이 그쪽으로 몸의 방향과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파브레가스 혹은 실바가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많이 보였다. 특히 첫 번째 득점이 파브레가스의 이러한 침투로 만들어졌다.

 

- 풀백 활용 방법

기본적으로 스페인은 풀백을 활용해 한번에 빠른 전환을 많이 시도했다. 또, 풀백이 자유로운 상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측면 공격수로 배치된 이니에스타와 실바가 이탈리아의 포백이 각각 자신들을 마크하도록 만들고, 중앙 미드필더 사비와 알론소도 이탈리아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자신을 마크하도록 만든다. 이로써 측면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없어지며 스페인의 풀백들은 더욱 자유로운 상황에서 공격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풀백들은 박스 안으로 일반적인 크로스를 올리기보다 자유로운 상황을 이용한 연계 플레이를 더욱 많이 했다.

 

- 내가 이탈리아 감독이었다면?

지금까지 전술에 대해 분석만 했지, 어떤 해결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이 부족했기에 결론을 위와 같은 형식으로 쓰고자 한다.

스페인 선수들이 아무 방해 없는 상태로 볼을 소유하면 안 된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대인방어 형태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 때문에 이탈리아는 중앙에서 공간을 더욱 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내가 감독이었다면, 플랫 4-4-2를 이용해 지역 수비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포백과 미드필더진의 공간을 매우 좁혀 스페인이 슈팅을 허용할 수 있는 위험지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 투톱은 수비에 많이 관여하지 않았으나 투톱까지 적극적으로 수비하도록 한다면, 수비적 안정성이 더욱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양측면에 매우 빠른 윙어들을 둬서 스페인 풀백의 공격 가담을 제한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앙 지향적인 선수들이 대거 포진된 스페인이었기에 풀백이 공격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면 그만큼 스페인은 후방에서 무의미한 점유에 시간을 많이 쏟는 단조로운 패털은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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